저탄고지의 시작, 황제 다이어트
저탄고지의 원조는 소위 'Atkins' diet'라고 알려진 '황제 다이어트'다. 무려 1970년대 초에 앳킨스 박사가 처음 주장한 이 후로 50년의 세월 동안 사랑받아온(?) 다이어트 방법이다. 엣킨스 다이어트는 현대에 이르러 저탄 고지 케토 제닉 Ketogenic 다이어트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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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엣킨스 박사의 저서 <식이요법 혁명> |
앳킨스 박사는 '칼로리 계산 말고 지방을 마음껏 먹되, 탄수화물 섭취만 제한하라'라고 주장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은가? 자연식물식은 여기서 단어만 바꿔서 '칼로리 계산 말고 탄수화물을 마음껏 먹되 지방을 철저히 제한하라'라고 주장한다. 사람을 현혹시키기 딱 좋다. 지방을 맘껏 먹어도 된다거나 탄수화물을 맘껏 먹어도 된다거나.
앳킨스 박사는 단백질과 지방 섭취량이나 종류를 제한하지 않고 배부를 때까지 먹는 것을 허용하면서 가공되지 않은 다양한 고기, 생선, 식물성 지방 등을 추천했지만, 사람들에게는 황제처럼 붉은 살코기 위주의 고기를 무한정 먹을 수 있는 식단으로 받아들여졌고, 많은 연구에서 고지방 식이가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장기적인 고지방 식이에 대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Am J Med 2002).
The American Paradox
이로부터 고지방 음식 대신 섭취한 섬유질이 적은 가공된 저지방-고칼로리 음식들이 오히려 비만의 주범이며, 식사의 질보다 칼로리 위주의 양적 개념을 강조하는 영양섭취 가이드가 잘못되었음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지게 된다.
앳킨스 박사가 사망한 후 지방이 심혈관 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가설은 정설이 되었다 (앳킨스 박사는 사망할 당시 180cm에 116kg의 거구였다). 이후 미국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저지방 식단 가이드를 배포하고 권장하여 실제로 지방 섭취율이 감소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비만, 당뇨, 심장질환의 수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를 American paradox또는 Fat paradox라고 한다.
그래서 정제된 가공식품을 배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탄수화물의 섭취를 질적 양적으로 개선하고자 여러 가지 다이어트 방법이 개발되었는데, 저탄고지 키토제닉 다이어트와 저지고탄의 자연식물식 다이어트도 그 중 하나이다.
키토 제닉 다이어트란
탄수화물 50% 이하의 식이에서 인체는 기아상태에 돌입하면서 포도당 대신 지방을 연소시켜 그 부산물인 케톤체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게 되는데 이 시스템을 Ketosis라 하고(Clin Invest Med 1995), 이 시스템에서 케톤체가 발생하는 것을 Ketogenesis, 이 케톤체를 ketone bodies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이를 케토제닉 다이어트 (ketogenic diet)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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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수화물과 단백질을 제한할 때 인체는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ketosis 상태가 된다. |
키토제닉 다이어트는 엣킨스 다이어트처럼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하지만, 정제식품을 배제하고 단백질도 어느 정도까지는 제한하며 지방의 질을 따진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2002년 Institie Medicine에 따르면 뇌는 지방으로부터 혈당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탄수화물이 없어도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오랜 기근에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생사(生死) 여부는 건강 여부는 좀 다른 문제인 듯 싶다.
케토제닉 다이어트로 살이 빠지는 이유
엣킨스 박사의 저서에 따르면 케톤체는 식욕을 억제한다고 되어있지만, 생성된 케톤체가 원래 있던 체지방의 이용을 증가시킨다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한 근거가 없다. 단순히 케토시스 상태가 되어서 체지방이 감소한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영양소를 제한하면서 오는 식단의 단조로움으로 인한 식욕상실로 음식 섭취량이 감소했거나, 단백질과 지방은 포만감이 훨씬 커서 총 섭취 칼로리가 낮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살이 빠진 것일 수 있다(Physiol Behav 1997). 기름진 건 많이 먹을 수가 없고 금방 질리니까 말이다.
저탄고지 식단으로 중성지방 HDL 콜레스테롤, 인슐린 민감도 등이 더 나은 결과를 보여주는 경우가 있어 맹신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저탄고지로 단기간에 체중의 감소가 일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건강증진 효과가 지속된다고는 결코 확언할 수 없다.
저탄 고지 다이어트로 살을 뺀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3-6개월 이내 단기간에는 살이 빠진다는 연구자료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 소규모 단기간 시험결과이고, 1년 이상 장기간의 임상 자료는 매우 부족하다. 임상 시험자가 저탄고지 식단을 장기간 지속하는 순응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장기간 지속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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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 찬양되다가 역적이 되다가 한다. 어느 한 영양소에 대한 평가가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그것은 정설(定說)이라서가 아니라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
저탄고지의 부작용
건강한 사람이 6개월 이내의 단기간에는 살이 빠지는 결과만 보면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케토플루라고 불리는 피부발진과 입냄새, 근경련, 설사, 쇠약감과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Ann Intern Med 2004). 장기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면 단기적으로도 몸에 부담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어차피 평생 지속할 수 없는 다이어트라면 결국 다시 찔 수 밖에 없다.
비만은 근 100년 이래 인간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것 같다. 오랫동안 고민했음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다이어트 방법이 개발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완전한 다이어트 방법은 없다는 뜻이고, 식욕은 본능이므로 인간은 먹는 즐거움을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자연식물식을 맹신했던 지난 3개월을 돌아보면 한쪽의 의견만 듣고 치우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내가 알고 싶은 정보만 읽고 보고 들으려고 하면 그 외에는 정말 들어도 안 들리고 보고도 보이지가 않는다.
나는 저탄 고지 다이어트는 시도해본 적은 없다. 원래 기름진걸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자신도 없다.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는 건강해지려고 하는 것인데, 잠깐 날씬하기 위해 건강을 담보로 평생 지속하지 못할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잘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